• 즐겨찾기 추가
  • 2018.08.15(수) 15:59
5·18 가두방송 차명숙 "계엄군의 고문·인권유린 상처 38년동안 여전"
남도투데이 namdo2030@naver.com
2018년 04월 30일(월) 13:33
5·18민주화운동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차명숙씨가 계엄군의 고문을 폭로하며 9월 출범을 앞두고 있는 진실규명위원회의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차씨는 30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 3층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당시 보안대와 상무대, 광주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차씨는 "1980년 5월19일 계엄군의 무자비한 만행을 광주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가두방송을 했다"며 "21일 전남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에는 병원에서 부상자를 돌보다가 기관원들에게 붙잡혔다"고 밝혔다.
또 "505보안대 지하로 끌려갔다"며 "언제(23일로 추정), 어느 병원(기독병원으로 추정)에서 붙잡혔는지 정확한 기억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안대 지하로 내려가는 수많은 계단만이 희미하게 생각나고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며 "고문은 가혹하고 잔인했으며 여성들에게 가해진 고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치욕과 인권도 보호되지 못했으며, 하나의 물건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무릎을 꿇게 한 뒤 군화발로 밟혔고 상무대에 잡혀온 어린 여중생, 여고생들은 책상위에 앉혀 놓고 물을 끼얹어 가면서 어깨가 빠지도록 몽둥이로 등을 두들겨 팼다"며 "살이 터져 피가 흘러 나와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인권유린과 고문은 광주교도소로 이감돼서도 계속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1980년 9월16일 광주교도소로 이감돼 지내던 중 9월30일 오후 5시께 교도관 3명이 들어와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곤봉을 끼어 양쪽에서 들고 나갔다"며 "수사관들은 사형까지 받을 수 있다며 협박했고 자살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10월2일부터 31일까지는 혁시갑을 한 채 징벌방에서 지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8년이 되도록 당시의 기억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5·18 당시 자행된 고문수사와 잔혹행위에 대해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광주교도소는 지금이라도 고문수사와 가혹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5·18민주화운동을 연구하는 단체 등은 아직도 80년의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있는 여성들을 찾아내 소중한 증언을 듣고 역사적 진실로 기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김용대기자
남도투데이 namdo2030@naver.com
독자 의견 (0개)
이 름 비밀번호
제 목
내 용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