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 2018.07.16(월) 16:26
5·18 왜곡 군 조직 역할 두고 학계 시각차…"진실 규명 필요"
남도투데이 namdo2030@naver.com
2018년 06월 21일(목) 17:14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잔혹함에 시민들이 항쟁하고 있는 모습. (사진=5·18민주화운동 기록관 공개 영상 촬영)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한 군 비밀조직의 역할을 놓고 광주지역 학계의 다른 분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군 당국이 어떻게 5·18 관련 기록을 왜곡·은폐하고 대응 논리를 만들었는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1일 5·18 기념재단과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에 따르면, 지역 연구원들은 지난달 재단 요청으로 약 39권 분량의 군 자료를 분석해 보고서('국방부 정보공개자료 해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재단 자료위원회에 제출됐다.
연구원들은 이 보고서에서 '국회 광주특위 출범을 앞둔 1988년 2월16일 육군본부 주관으로 80대책위원회(일명 육군위원회), 1988년 5월11일에는 국방부 국회대책특별위원회(일명 511위원회)가 꾸려졌다'고 밝혔다. 연구원들은 '검토한 자료에 한정해 판단하면 80대책위원회가 5·18민주화운동 왜곡, 특히 군 작전 분야 왜곡을 주도적으로 담당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이후 국방부(511위원회)가 국회 관련 창구 역할을 맡게 됐고, 국방부는 육군본부(80대책위)의 왜곡 프레임을 그대로 흡수해 여소야대의 정치 상황에 맞게 국방연구원 등의 참여 아래 더욱 치밀한 왜곡 논리를 개발, 광주청문회에 대응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관련자 면담, 내부자 증언 등을 통해 보다 엄밀하게 책임 소재가 밝혀져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연구 결과에 대해 김 교수는 다른 분석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이날 '국방부 511연구위원회와 육군 80대책위원회 역할에 관한 고찰'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511위원회가 육군본부(80대책위)의 왜곡 프레임을 그대로 흡수했다'는 주장은 견강부회이자 사실 관계의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1988년 11월부터 1989년 2월24일까지 진행된 5·18 광주청문회 대응 논리를 511연구위원회의 실무조직(한국국방연구원 등)이 새롭게 만들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육군 80대책위는 1988년 당시 노태우 정권의 인수위원회 활동을 전개했던 '민주화합추진위원회(민화위)'에 따른 육군의 대응 조직으로 꾸려졌다. 광주청문회 대응 조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1988년 2월16일 민화위가 '5·18 때 군의 과잉 진압을 정부 차원에서 사과하라'는 등의 건의를 했으며, 이를 두고 같은 날 구성된 육군80대책위가 조직적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실제 군 자료에는 '육군 80대책위는 88년 2월16일 사태(민화위 활동 추정) 관련 대비 계획을 육군 총장에게 보고했고, 88년 3월30일 광주사태 보고서를 펴내 관계기관에 보고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 교수는 "511연구위원회 실무조직인 한국국방연구원은 '대국회 광주문제대책(안)'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육군 80대책위의 대응 논리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수준의 새로운 왜곡 논리를 만들어 집대성했다"며 "이렇게 개발된 논리에 따라 군은 청문회를 각본대로 진행했고, 5·18 기록을 새롭게 왜곡·조작했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이 5·18을 왜곡된 시각으로 인식하는 데 기여했고, 현재까지도 극우 보수세력들이 5·18을 폄훼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며 "역사를 왜곡한 조직의 주체·범주·내용 등을 면밀히 재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18 기념재단은 최근 5·18 헬기사격 및 전투기 대기 관련 국방부 특조사위원회에서 확보한 65만여 쪽 분량의 5·18 기록물을 제공해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했다.
군이 발포 경위와 사망자 수, 부대 투입 일시·장소, 최초 사격 근거 등을 어떻게 왜곡했는지 조사해 자체 결론을 내놓은 뒤 오는 9월 특별법을 계기로 출범하는 5·18 진상규명위원회에 인계할 방침이다.
한편 이 같은 논란은 511연구위원회 실무위원(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으로 활동했던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5·18 왜곡·은폐는 511연구위가 아닌 육군 80대책위가 주도했다"고 해명한 뒤 지속되고 있다 .
/광주=이만석기자
남도투데이 namdo2030@naver.com
독자 의견 (0개)
이 름 비밀번호
제 목
내 용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