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 2018.12.13(목) 16:09
법원, 전범기업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 상대 항소 기각
남도투데이 namdo2030@naver.com
2018년 12월 05일(수) 14:35
광주고법이 일제 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을 상대로 한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항소를 기각했다.
광주고법 제2민사부(부장판사 최인규)는 5일 오후 법정동 204호 법정에서 피고 미쓰비시중공업이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재림(88) 할머니와 양모(90) 할머니, 오모(사망) 할머니의 남동생 오모(83) 씨, 심모(88) 할머니 등 4명을 상대로 한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은 적정하다"며 미쓰비시 측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10월 말 항소심 첫 재판에서 미쓰비시 측 변호인은 1심과 마찬가지로 "국제재판 관할권이 없다. 옛 미쓰비시는 현재의 미쓰비시와 다른 회사다.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소멸시효가 완성됐다. 만약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위자료 액수가 과다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1심 법원은 '미쓰비시는 원고들에게 각각 1억 원, 1억2000만 원, 1억5000만 원 씩 총 4억7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에 미쓰비시는 항소했다.
1심은 "일본의 핵심 군수산업체였던 옛 미쓰비시중공업은 중일전쟁·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 수행 과정에 일본 정부의 인력 동원 정책에 적극 편승해 인력을 확충했다"고 밝혔다.
이어 "근로정신대에 지원해 일본에 가면 상급학교에 진학시켜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취지의 거짓말로 근로정신대에 지원할 것을 회유하거나 부모의 의사에 반해 지원토록 하고, 부모의 반대로 지원을 철회하려 하면 협박을 통해 지원의사를 유지하게 해 원고 등을 일본으로 데려갔다"고 설명했다.
또 "원고 등은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강도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조직적인 기망과 협박에 의해 일본으로 연행된 뒤 엄격한 감시 아래 위험하고 혹독한 노동에 강제로 종사하면서도 열악한 숙소와 부실한 음식만을 제공받았을 뿐 급여조차도 지급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심은 "옛 미쓰비시중공업이 침략전쟁을 위한 전쟁물자의 생산에 원고 등을 강제로 동원하고 노무제공을 강요한 행위는 당시 일본국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에 적극 동참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현 미쓰비시와 옛 미쓰비시중공업은 실질에 있어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김 할머니 등은 일제 강점기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공짜로 할 수 있다. 좋은 학교도 갈 수 있다. 돈도 많이 벌 수 있으며 반년에 한 번은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등의 말을 믿고 근로정신대에 지원했다.
하지만 옛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공장에서 엄격한 감시 아래 비행기 페인트칠·부속품 다듬는 일 등의 작업에 종사했으며 급여 또한 지급받지 못했다. 자유로운 외출 또한 금지됐다.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검열을 받아야 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5월~6월 광주·전남·대전·충남 지역에서 당시 13~15세 어린 소녀 약 300명을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동원했다.
이들은 해방이 될 때까지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중노동을 강요당했다. 광주·전남에서 동원된 6명의 소녀들은 1944년 12월7일 발생한 도난카이지진 당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광주와 전남 지역에 신고된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유족 포함)는 2016년 기준 광주 16명·전남 29명 등 총 45명이다.
광주·전남 지역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미쓰비시 간 소송은 총 3건이다.
1차 소송과 관련, 대법원 민사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2차 소송 항소심은 이날 선고가 이뤄졌으며, 3차 소송 항소심은 (광주지법 항소부)은 오는 14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광주=이형진기자
남도투데이 namdo2030@naver.com
독자 의견 (0개)
이 름 비밀번호
제 목
내 용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