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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24(수) 16:36
일본 강제징용 피해 집단소송 문의 50여건…숨겨졌던 만행 속속

"헌병대에 끌려가 지하 1000m에서 속옷차림 노역"
"해방 후 돌아왔지만 몸 만신창이…가정 풍비박산"

남도투데이 namdo2030@naver.com
2019년 03월 21일(목) 16:02
'일제 강점기 전범기업 상대 집단 소송 추진계획'이 전해지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문의가 50여건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지난 19일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피해자들의 접수를 받아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본격 접수는 25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2주 동안 광주시청 1층 민원실에서 진행할 예정이지만 앞서 소송 방법 등을 묻는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집단소송 계획이 발표된 다음날 20일 35건, 이날 오전 15건 등 현재 50건이다.
본격 접수가 시작되면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손해배상 소송과 별개로 다른 일본 전범기업 집단 소송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문의가 잇따르면서 전범기업의 숨겨졌던 만행이 드러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대부분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 한 지역에 거주하는 이모씨는 "아버지가 1941년 북해도 탄광에 끌려간 것 같다"며 "당시 집으로 보낸 사진의 뒷면에 일본 현지 주소가 적혀있었고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온 뒤 몸이 좋지 않아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전남 담양의 이모씨는 "아버지가 1940년 북해도 해저 지하탄광에서 3년 동안 강제징용을 한 뒤 12월에 귀국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하 1000m까지 내려가 속옷만 입고 탄을 캐느라 생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들었다"고 소송 참여 방법을 문의했다.
강모씨는 "아버지가 구타를 많이 당해 해방 후 돌아와서도 고생했다"며 "어려웠던 시절이라 병원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오랫동안 한방 침으로 견디시다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김모씨는 "아버지가 해방 뒤 손수레에 실려올 정도로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었다"며 "아버지가 아파 가정이 파탄났고 억울하게 살아 온 것이 서러워 소송에 참여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서울에 사는 장모씨는 "큰아버지가 당시 산속에서 동네 아이들 공부를 가르치다 갑자기 헌병한테 끌려 나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며 "지금까지 사망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행방불명자로 있다"고 밝혔다.
문의자 중에는 군인으로 끌려갔지만 피해자 확인을 받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한 유족은 "아버지가 군인으로 끌려가 고생하다 오셨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소송에 참여할 수 없느냐"며 아쉬워했고 이모씨는 "아버지가 탄광에 끌려가 2년간 고생하다 와 일찍 돌아가셨는데 바쁘게 살다보니 피해자 신고를 받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번 집단 소송에서는 군인·군속 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별도 소송을 진행하는 피해자는 제외된다.
소송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지원' '강제동원 피해심의 결정통지서'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위로금' 등 지급결정서 1통과,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를 1통씩 준비하면 된다.
/광주=이형진기자
남도투데이 namdo20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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